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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MOVIE REVIEW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리뷰 : 편리함보다 중요한 것

by 93년의 해일 2025. 2. 8.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스틸컷 ⓒNetflix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포스터 ⓒNetflix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영화 스포일러 포함*

 

 

 

월레스와 그로밋 새 시리즈 복수의 날개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한참 리뷰를 써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바빠서 미뤄두었는데, 마침 어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내용을 한 번 더 훑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지닌 따스함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 시리즈는 너무 오래 전에 보아서 월레스가 발명가인 것, 그로밋이 말을 하지 않는 강아지인 것, 그리고 달치즈 정도만 기억에 있었는데 이전 시리즈를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물론 앞선 시리즈인 <전자바지 소동>을 안다면 더 매끄럽게 내용을 이해하긴 좋을 것이다. 이번 영화가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스토리가 이어지는 연작이었다고 한다.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움직임에서부터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진다. 이전 시리즈와 위화감도 거의 없다. 아날로그 제작 방식이 가진 장점 중 하나이다. 한결 같음, 그 '클래식함'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내용도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기승전결과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닭인척하는 메인 빌런인 펭귄, 페더스 맥그로가 수감되고서 월레스의 새 발명품인 가정용 로봇을 사악한 성격으로 조작하여 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똑한 강아지 그로밋이 이변을 알아차리고 월레스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간다.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이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클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스릴러적 요소가 꽤 짙다. 웅장하고 하수상한 배경음악들과 비현실적인 움직임들이 특히 그렇다. 월레스의 인공지능 발명 로봇인 '노봇'들의 성격이 착함(good)에서 사악함(evil)로 변하면서 눈의 동공이 커지는데, 이 순간의 시각적 충격도 상당했다. 어렸을 적 일본 공포 영화에서 등장하던 무서운 귀신 인형이 떠오르는 연출이었다고 할까. 노봇들이 군대를 이루어 일제히 각 맞춰 움직이는 장면 또한 섬뜩했다. 못 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노봇의 원래 쓰임은 무서운 게 아니다. 노봇이라는 이름은 땅의 요정인 노움과 로봇의 합성어인데, 월레스가 이 로봇을 처음 발명한 이유가 (비록 원치 않았다 해도) 가드닝을 하는 그로밋을 위해서였다는 게 잘 드러나는 점이다. 이후에 이 노봇이 사고를 일으키긴 하지만, 월레스가 발명품을 만드는 이유는 '선한 의도'라는 걸 알 수 있다. 도구는 탓이 없다는 말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주제적인 측면에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다. 작중 배경은 현재보다 과거이지만 인공지능 로봇의 존재는 현대의 모습과 꼭 닮았다. 성능도 뛰어나고 한 마디의 명령만으로 일을 척척 해내는 노봇은 챗gpt가 활성된 현재의 ai 기능들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사람이 만든 기계들이 인간에게 반감을 가지고, 사악한 뜻을 품고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스토리라인은 신선한 것이 아니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 <에이지 오브 울트론> 또한 그런 내용이고 말이다. 전자공학과 기계공학이 발전을 이룰 때마다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에 따른 경각심에 대한 내용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흔하디 흔한 이 메세지가 본작에서도 주제부로 던져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인공지능 그 자체보다 사용자의 악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결말로 나아간다. 펭귄(페더스)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위기에 빠진 그로밋을 '착함' 모드로 돌아온 노봇들이 구해주고, 마지막에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게 있단 걸 깨달은 월레스가 그로밋을 토닥이는 기계 대신 손으로 직접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 되니 말이다.

 

 

다만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의 힘이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 더 강력하다. 수작업으로 만든 아날로그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이 영화는 클레이로 긴 시간을 들여 만듦으로써 증명한다. 말하자면 이 영화 자체가 디지털에 대한 경각심 그 자체인 셈이다.

 

 

또 이 주제가 과거보다 와닿는 이유는, 요즘처럼 인공지능을 많이 사용하던 시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ai는 편리하다. 질문에 빠르게 답을 주고 길고 어려운 대본도 작성해주며, 그림과 영상, 이제는 노래도 ai로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노봇'의 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노봇들이 사악한 뜻을 품고 움직였을 때 곧바로 사람들이 진위를 구분할 수 없었던 것처럼 ai가 제작한 가짜 정보들도 점점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편리함에 반비례하는 아이러니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들이 무분별하고 규제없는 ai가 올바른 것인지 깊게 고민할 거리가 되었다.

 

 

이번 시리즈에 새 캐릭터가 등장한다. 은퇴하는 경감과 대조적인 신입 순경이다. 은퇴를 앞둔 매킨토시 경감이 느슨하고 조금 현실에 찌든 모습을 보여준다면, 순경 무커지는 신입다운 캐릭터이다. 매뉴얼을 따르며 때로는 우직한 면 때문에 실수하는 것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이 캐릭터는, 작중 후반으로 가면서 매킨토시가 직관(촉)에 따르라고 하는 말에 본인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월레스와 그로밋의 무죄를 믿어준 첫번째 사람이 된다. 직관, 그리고 감정. 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는 게 좋았다.

 

 

이처럼 현대적인 ai 로봇 소재를 사용했지만,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메세지가 있는 작품이었다. 오랜만에 애니메이션 영화에 흠뻑 빠져서 보았다. 월레스와 그로밋은 여전히 명작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가 이 작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