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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BOOK REVIEW

<폭풍의 언덕> 리뷰 : 사랑이 꼭 고귀한 것은 아니다

by 93년의 해일 2025. 1. 22.

 

 

고전 문학 중에는 제목이 너무 유명하여 이미 읽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게도 몇 있는데 <폭풍의 언덕>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는 숱하게 내용을 들은 것 치곤 결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가 가장 컸고 두번째 이유는 싱어송라이터 심규선의 동명의 곡 때문이다. 나는 그의 노래 폭풍의 언덕을 듣고 배경이 되는 내용이 궁금했다. 누가보아도 이 책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었으니 말이다. 다 읽고 나니 과연, 이 곡의 가사와 몰아치는 호소력이 더욱 이해됐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낯설었다. 민음사의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굉장히 날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의 구성 그리고 인물들의 성격들이 생생하면서도 거칠게 다가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독서를 중단하고 인물관계도를 찾아보기도 했다. 헷갈리면서 몰입을 못하긴 싫었다. 하지만 읽다보면 처음 복잡하다고 생각했던 인물관계는 꽤 명쾌하게 정리된다. 비록 인물간의 감정선들은 명쾌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시대적인 배경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종교적인 색이 아주 강하다는 인상이었다. 두 집안을 파멸로 몰고가는 히스클리프를 끊임없이 악마로 표현하는 점이나 죽음 그 후의 사후세계에 대해 천국으로 가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 등등.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등장인물들에게 천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죽어서 유령이 되어 지상을 떠돈다는 암시로 소설이 끝맺으니 말이다. 각자 다른 사람들과 결혼하여 자식까지 본 이 젊은 연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가르침들을 차갑게 조소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것이 당시 출간되었을 때 비판점이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애증이었고 결말은 비극에 가까웠지만 그 상황을 만들었던 주변 환경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히스클리프의 출신이 천하다고 힌들리가 박하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고, 캐서린에 대해 오해하지 않고 그녀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또 결말이 다르지 않았을까 그 어긋난 사랑을 곱씹어보게 된다.

 

캐서린에겐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재산이 이유였고, 그녀의 오라비가 이유였다. 캐서린의 성격을 되짚어보면 그녀의 사랑에는 오만함이 있다.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검은 얼굴의 비천한 히스클리프와는 결혼할 수 없었던 게 그녀에겐 불행이자 오만인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이야기가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의 마음을 오해하여 그녀를 떠나고, 캐서린이 에드거와 결혼했기 때문에 생긴 어긋난 사랑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랑과 복수, 거기에 더해 히스클리프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세상의 박해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비극이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앞서 조금 언급한 종교적인 시각에서도 그렇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주된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 넬리는 버릇없이 구는 인물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한 편 히스클리프를 동정하는 면이 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본성을 거칠고 악마적인 것으로 매도한다. 히스클리프가 두 집안을 파멸시키기 위해 했던 일들은 물론 캐서린의 배신에 의한 것이고 그게 가장 큰 이유임은 분명 하지만, 그를 그런 성격으로 키운 것은 어린시절 박해와 차별이었다. 타고난 성격도 중요하지만 히스클리프가 자란 환경이 미친 영향도 고려해야 공정하지 않을까.

 

이렇게 히스클리프를 변호하는 것은 헤어튼이 있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가 자신과 똑같은 꼴로 만들기 위해 거둔 헤어튼의 모습은 히스클리프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캐서린의 이름을 물려받는 캐시를 두고 에드거-캐서린-히스클리프로 얽혔던 애증의 관계가 린튼-캐시-헤어튼으로 대를 이어 반복되는데, 헤어튼은 히스클리프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 

 

정작 히스클리프의 아들은 린튼이었지만 히스클리프는 헤어튼에게 본인을 투영하였고 더 닮은 것도 헤어튼이라는 언급이 있다. 복수라는 이름으로 언쇼 집안의 핏줄인 그를 자신처럼 못 배우고 천박한 '비웃음 당하는 존재'로 만들었지만 캐시는 캐서린과 달리 남편이 일찍 죽어버렸고, 헤어튼을 끈질기게 포용할 수도 있었다. 정답게 글을 가르치고 가르침 받는 장면에서는 마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이어졌더라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하는 관계 그대로였고, 그런 헤어튼과 캐시를 히스클리프가 바라보는 장면은 그를 동정하기에 충분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고 또 누구나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과거의 기회를 떠올린다. 캐시와 헤어튼은 히스클리프가 가지지 못했던 과거의 가능성이며 그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한 세상이 열렸었더라면 볼 수 있었을 또 다른 모습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히스클리프는 헤어튼처럼, 그리고 캐서린도 캐시처럼 서로를 대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건 오직 죽음 뒤에서 뿐.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천국으로 가지 못하고 영혼이 되어 떠도는 것은, 종교적인 메시지로는 고귀하지 못하고 친절한 선택을 하지 않아서라고 해석할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다. 나는 그보다는 인간적으로 표현하고 싶다. 두 사람의 모습은 그저 후회라고. 어리석은 선택들을 했어도 그 어리석음 마저도 사랑한 모습이라고 말이다.

 

다 읽고 나니 소설의 으스스한 분위기도 기억에 남는다. 회색빛의 음울한 글의 심상이 정말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150년도 전에 쓰인 글인데도 지금과 공유하는 어떤 감정들이 있다. 옳은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 복수의 순기능이 존재하는지. 틀에 박힌 말이지만 복수로 해결되는 것은 없고 용서만이 고귀한 것이라 한다면 억울하고 응어리진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걸까? 히스클리프를 동정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만들었던 심규선의 곡도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