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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DRAMA REVIEW

<은밀한 하녀들> 리뷰 : 결말까지 은밀해진 작품

by 93년의 해일 2025. 2. 12.

 

 

 

 

*<은밀한 하녀들> 드라마 스포일러 포함*

 

 

 

시즌 4개의 은밀한 하녀들을 모두 보았다. <위기의 주부들>보다 시리즈 감상에 오래 걸린 기분이다. 사실 은밀한 하녀들은 전부 봤다고 말하기 찜찜한 구석이 있다. 시즌 4까지 제작되었지만 이후 시즌이 캔슬되어서 영영 미완으로 남은 드라마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결말이 이렇게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면 보는걸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봤고, 조금은 찜찜하게 리뷰를 남기게 되었다.

 

 

<위기의 주부들> 제작진이 만든 시리즈라 그런지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 방식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라티노들의 이야기라는것. 주연들이 모두 라틴계이며, 사용한 배경 음악들도 정열적인 라틴음악이다. 그 모든 요소가 이 드라마는 라틴 드라마라고 온 몸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과장된 상황들과 극적인 스토리들도 라틴 문화권의 일일연속극인 텔레노벨라를 떠올리게 했다. 빠르고 시원한 전개와 말도 안 되는 막장 스토리. 모든 드라마와 시트콤에는 그런 구석이 있지만 텔레노벨라에서는 표현이 좀 더 극적이라는 인상이 있다. 은밀한 하녀들도 그렇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 중 한 사람이자 위기의 주부들 가브리엘로 출연했던 에바 롱고리아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한 하녀들의 주요 배경이 되는 베버리 힐스는 에바의 드라마 데뷔작 베버리 힐스(2000)를 떠올리게 하고, 마지막 시즌 첫 장면에서 에바 본인이 카메오로 출연해서 '나는 위기의 주부들에도 출연했다고!' 라고 외치는 장면은 소소하게 웃음을 주기도 한다. 본작 전체적으로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기도 해서 비교해보는 것도 작은 재미였다. 마리솔의 마지막 피앙세는 위기의 주부들 메인 남자주인공이었기도 하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위기의 주부들보다 다소 아쉬웠다. 첫 시즌에서 마리솔이 하녀인 척 하면서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시즌4에서 로지가 스펜서의 누명을 벗겨주려고 고군분투 하는 것과 스토리라인이 반복되며, 로지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은 진지한 연애도 뚜렷한 목적의식과 성장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가수가 꿈인 카르멘은 시즌이 지날수록 열정을 잃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다음 시즌이 있었다면 카르멘이 스타가 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거란 비공식 스토리는 존재하지만, 데뷔의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한 그 이후 스토리에서는 카르멘이 진지하게 노력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에피소드의 강약이 많이 아쉽기만 하다. 

 

 

시즌별로 메인이 되는 미스터리 사건이 하나 있고 하녀들 (마리솔은 하녀가 아니지만 어쨌든 포함해서) 각각이 겪은 사건들이 하나로 모이며 메인 사건을 해결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마리솔, 로지, 카르멘, 조일라 각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유대와 우정을 느끼기에는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것도 서로의 삶을 침범하는 부분도 너무 적지 않았나 싶다. 시즌이 더 제작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재밌었던 부분 또한 있었다. 하녀, 메이드라는 직업 특성상 베버리 힐스에 사는 부자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빈부격차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데 같은 공간의 이질적인 그 두 세계가 엮이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메인 요리라면 부자들의 좀 '재수없는 모습들'이 양념을 친다고 할까.

 

 

메이드들의 일하는 집안과의 관계들도 제법 재밌었다. 로지는 메이드로 일하다가 결혼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고(사건들이 많아서 잘 되진 않지만), 조일라는 한 집에서 헌신하며 고용인과 깊은 우정을 나누는 관계, 그리고 카르멘은 성공을 위해서 메이드로 일하는 집을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면이 있다.

 

 

좋았던 캐릭터는 로지와 에블린이었다. 주연 중 하나인 로지는 본인이 메이드로 일하는 집의 주인이자 배우, 그리고 '착한 사람'인 스펜서와 사랑에 빠지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죽은 줄 알았던 전 남편이 살아 돌아와 혼란을 주는 것이나 위기에 빠진 스펜서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도 하고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는 모습은 다른 유명한 텔레노벨라 드라마 <제인더버진>의 제인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로지가 특히 좋았던 점은 정말 선하고 착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솔직하며 흑심보다는 양심을 택하려 하고 다른이를 위해 헌신할 줄도 아는 캐릭터. 그렇다고 성격이 재미없는 것도 결코 아니다. 조금 엉뚱한 면도 있고 불의에는 맞서려고 하는 용감한 면도 있다. 그런 모든 점들이 로지를 정말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에블린은 로지와 정반대이다. 에블린은 그리 선하지 않은 캐릭터로, 이름에서도 사악한evil과 악마devil를 연상 시킨다. 시즌1에서는 일부러 빌런처럼 보이게 만들었지만 사실 페이크이며 사실은 그녀의 남편과 함께 감초 역할이라 불리는 게 더 적절하다. 아드리안과 함께 거만하고 의뭉스러우며 이기적인 행동들로 각종 사건들과 엮이는 편이다. 결코 선한 캐릭터도 아니고 친구가 되고 싶은 캐릭터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드라마의 재미 중 하나도 에블린과 아드리안의 애증으로 엮인 사랑 싸움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겠다.

 

 

가난한 라틴계 하녀들과 부유한 부자들 사이의 계급적 갈등도 드라마의 재미요소이지만 시즌4에서는 부자인척하는 조일라, 이혼 갈등으로 일을 시작한 에블린 등 위치가 전복된 것도 볼 수 있는데 부자들의 사교모임 관련 에피소드를 보면 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또한 깊게 다루진 않았지만 이민자들, 불법체류자, 인종차별적 요소를 풍자하는 점도 드라마를 풍부하게 만들어준 요소였다. 라틴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큰 의미였을 것 같다.

 

 

정리하자면 스토리가 촘촘하지 못한 점은 이래저래 평을 깎아먹는 부분이겠지만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무겁게 내용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갈등도 빠르게 해결되는 편이라 밥친구로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