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애거사 짓이야> 드라마 스포일러 포함*
전부 애거사 짓이야. <완다비전>의 스핀 오프 드라마이다. 완다의 빌런이었던 애거사 하크니스가 주인공인 작품으로, 원제는 Agatha All Along이다. 단어의 앞머리 글자가 모두 A로 같다.
완다비전 드라마를 볼 땐 애거사가 싫었는데 이 드라마에 나오는 애거사는 좋았다. '매력적'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익살스럽고, 사랑스럽고. 본질적으로는 배신을 즐겨하고 이기적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캐릭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밉지 않았다.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출중해서 그런지 애거사에게 이입되는 부분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반전이 많은 스토리였다. 애거사에게 걸려 있던 마법이 풀리는 1화의 구성이나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애거사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는 것, 빌리의 정체, 기타 등등. 복선이 잘 깔려 있어서 따라가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완다비전의 속편으로도 좋고, 별개의 드라마로 봤을 때도 좋았다.
애거사는 원래 성격이 비겁하고 이기적인 캐릭터다. 후반에 나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애거사가 아이를 잃고 겪은 일들을 보아도 그렇다. 천성이 악한 애거사. 하지만 그녀를 싫어할 수 없었던 건 빌리를 만나 애거사가 점점 변한다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녀들이 죽을 때까지 힘을 빼앗아왔던 애거사가 빌리만큼은 죽이지 않은 것, 그리고 그 애를 희생시키는 대신 자신의 죽음을 택한 것까지가 애거사를 표현하는 캐릭터성이다. 완전한 선역은 될 수 없지만 계기만 있다면 악역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그런 메세지가 작품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축은 빌리이다. 빌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는 애거사의 아들이 사실은 죽지 않았고, 애거사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후에 빌리라는 게 밝혀지고, 완다비전 이후의 빌리가 어떻게 몸을 가진 채 살 수 있었는지 드러났을 땐 안타깝기도 했다. 완다가 빌리와 토미를 되찾기 위해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무슨 짓까지 했는지 이미 알기 때문에 더 그랬다.
잠깐 외람된 말이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완다비전과 닥터스트레인지 영화도 다시 봤다. 완다비전에서는 빌리의 성격에 집중했고, 닥스 영화에서는 완다의 감정선에 집중했다. 빌리에게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빌리는 영민한 아이라는 게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빌리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정말 착한 아이였더라.
완다비전에서 완다의 가족이 우노를 가지고 노는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데, 그 게임도 그대로 애거사에 반영된 점이 재밌었다. 그리고 그 우노가 마녀의 길을 빌리가 만들었다는 증표 중 하나였다는 게 좋았다.
드라마에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마녀의 길과 시련들의 짜임새이다. 각각의 마녀들에게 주어진 과제들이 마녀들의 트라우마들과 이어져 있던 것, 그리고 그것들을 끝끝내 극복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시련을 이겨내는 영웅담과 닮아 있다. 비록 그 시련들을 이겨내는 게 영웅-히어로가 아니라 악역으로 묘사되는 마녀들이지만 말이다.
특히 좋았던 스토리는 릴리아의 시련이었다. 릴리아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시간을 순차적으로 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시간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존재하며 살아간다. 모든 시간을 동시에 사용하는 셈이다. 어쩐지 영화 컨택트(원제 얼라이브)가 생각나는 설정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특성 때문에 릴리아는 전 생애를 통틀어서 미래의 자신에게 점괘를 하나씩 남기곤 했다. 회차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뜬금없는 말들을 하는 게 사실은 미래에서 과거로, 또 과거에서 미래로 워프하는 릴리아 본인이 남기는 메세지들이었던 셈. 그 메세지들을 모아서 결국에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알게 된 릴리아는 친구들을 살리고 시간의 마녀다운 위대한 죽음을 맞는다.
릴리아는 일평생 언제 죽을지를 두려워한 마녀였는데 그 죽음의 순간 비겁하지도 않았고 겁쟁이의 모습도 아닌, 용기있는 최후를 맞이한 게 정말 감명 깊었다. 회차마다 조금씩 있었던 릴리아의 복선들이 짜맞춰지는 카타르시스도 있었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릴리아의 스토리가 좋은 또다른 이유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주제부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두려운 일은 수없이 많지만, 때로는 비겁하기도 한 본인 스스로를 마주 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애거사의 경우도 그렇다. 데스에게 죽음을 맞고 유령이 된 애거사가 빌리에게 들러붙을 때 처음으로 진실된 마음을 고백한다. 아직 사후세계로 가 죽은 아들을 다시 만날 용기가 없다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거사가 어떠한 의도도 거짓도 없이 대답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 마지막 장면으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마녀들은 본인에게 거짓없는 마음을 모두 고백한 것이 된다. 그 마지막 장면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용기를 말하는 드라마로 완성되었다.
*피카레스크 장르에 대해서 덧*
이 드라마를 보면서 피카레스크 장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악역이 주인공인 장르의 장단점이 뭘까. 캐릭터성이 재밌어진다는 건 장점일 것이다. 판에 박힌 정의로운 기사가 주인공이 아니란 점은 아직까지 신선하다. 하지만 악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행위 자체는 경계하는 것이 옳으리라.
애거사는 <완다비전>에서 완벽한 악역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애거사도 그때의 애거사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악역이다. 거짓말을 하면서 속내를 감추고 (의도한 게 아니더라도) 동료를 살해하고, 과거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을 살해한, 빌런 그 자체. 본인의 목숨으로 죗값을 치렀다고 하기엔 죄질이 그보다 더 무겁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애거사를 보고있자면 앞에 썼듯 그녀에게 이입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 사람은 보통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을 선역으로 두고 싶어한다. 캐릭터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나 또한 애거사의 악행들을 맹렬하게 또 냉정하게 비난하기 어려웠다. 이미 애거사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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